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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R&D 활성화에 대한 도시계획 제언: '적기조례'를 넘어 혁신 생태계로

대학 R&D 활성화에 대한 도시계획 제언: '적기조례'를 넘어 혁신 생태계로

대한민국 도시계획의 패러다임이 과거의 '양적 확장'에서 '질적 혁신'으로 급격히 전환되고 있습니다. 그 변화의 최전선에 서야 할 곳이 바로 지식의 산실인 '대학'입니다. 하지만 현장에서 마주하는 대학의 현실은 19세기 영국에서 자동차의 속도를 제한했던 '적기조례(Red Flag Act)'를 떠올리게 합니다. 첨단 기술은 시속 100km로 달리고 있는데, 이를 뒷받침할 법과 제도는 여전히 마부의 깃발에 맞춰 걷고 있는 셈입니다.


1. 대학 R&D 필요성: 'Lab-to-Market'의 가속화

오늘날의 대학은 더 이상 상아탑의 역할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특히 바이오(Bio), 신소재, 차세대 에너지, 반도체와 같은 첨단 분야는 실험실(Lab)의 연구가 즉각적인 실증과 시제품 생산으로 이어지는 'Lab-to-Market' 체계가 필수적입니다.

이러한 첨단 분야 연구의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기 위해, 대학 내부에 고도의 실험 시설은 물론, 이를 지원하기 위한 부대 시설이 유기적으로 결합되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바이오 신약 개발 과정에서 발생하는 특수 폐수를 처리하기 위한 전용 폐수처리시설, 초정밀 공정을 위한 고압가스 저장소, 실험용 화학물질을 안전하게 관리할 수 있는 위험물 저장창고 등이 캠퍼스 내에 핵심 연구동과 함께 입지해야 연구의 효율성과 연속성을 담보할 수 있습니다.


2. 현행 법·제도적 한계: '학교'라는 이름의 획일적 규제

현재 대학 R&D의 성장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벽은 대학을 초·중·고등학교와 동일한 '학교' 카테고리에 묶어 규제하는 획일적인 행정 편의적 발상에 있습니다.

① 「교육환경 보호에 관한 법률」의 획일성

이 법은 학교 뿐만 아니라 학교 경계로부터 일정 거리 내를 대상으로 학생의 보건·위생, 안전에 유해한 시설의 입지를 금지합니다. 대기오염물질 배출시설이나 수질오염물질 배출시설 등이 대표적인 '규제 시설'입니다. 그러나 대학생과 전문 연구원이 상주하며 연구하는 대학 캠퍼스에 영유아나 초등학생 수준의 보호 기준을 일률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규제입니다.

② 도시계획시설(학교)의 용도 제한

도시계획법상 '학교' 부지에는 학교의 기능에 부합하는 시설만 들어설 수 있습니다. 연구용 시제품 생산 라인이나 기업과의 공동 연구를 위한 파일럿 플랜트(Pilot Plant)는 현행법상 '공장'으로 간주되어 입지가 원천적으로 차단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3. 대안 제시: 규제 혁신을 위한 도시계획적 접근

① 관련 법령 상 대학의 지위 재정립

대학을 「교육환경 보호에 관한 법률」 등 관련 법령의 적용 대상에서 전면 분리하거나, 대학의 특수성을 고려한 일련의 '특례 조항'을 신설해야 합니다. 연구 목적이 명확하고 자체적인 안전 관리 시스템을 갖춘 부대 시설(폐수처리, 가스 저장 등)에 대해서는 심의를 통해 입지를 허용하는 '네거티브 규제' 방식으로의 전환이 시급합니다.

② 대학 내 (가칭)'혁신 캠퍼스 특구' 도입

캠퍼스 전역을 하나의 용도로 묶는 대신, 특정 구역을 (가칭)'혁신성장구역(White Zone)' 등으로 지정해야 합니다. 이 구역 내에서는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상의 용도 제한을 대폭 완화하여, 연구시설과 연계된 소규모 제조 시설 및 환경 기초 시설이 입지할 수 있도록 '복합용도구역' 개념을 적극 도입해야 합니다. 현재 「사립학교법」이나 「고등교육법」에서도 학문 연구의 다양성을 위해 교육 및 연구를 위한 필요 시설의 자율성을 어느 정도 보장하고 있으나, 타 법령(학교보건법 등)과의 충돌로 인해 실효성이 떨어집니다. 이를 통합적으로 조정할 수 있는 도시계획적 조정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③ 기술 및 성능 중심의 안전 가이드라인 수립

이미 각종 시설들은 개별적인 설치 근거 법 및 기준에 따라 설치 및 운용될 수 있는 상황에서, 학교라는 기준으로 이중 규제를 받고 있는 실정입니다. 따라서 단순히 시설의 종류(명칭)만으로 금지하는 것이 아니라, 해당 시설이 갖춘 방재 및 정화 기술의 성능을 기준으로 입지 여부를 결정해야 합니다. IoT 센서 기반의 24시간 모니터링 시스템, 밀폐형 정화 공법 등을 도입한 시설은 조건부로 대학 내 입지를 허용함으로써, '안전'과 '연구'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합리적인 기준을 마련해야 합니다. 



4. 결론: 대학은 국가 혁신의 '핵심 기반 시설'입니다

도시계획은 미래를 담는 그릇입니다. 지금 우리의 대학은 낡은 규제로 인해 첨단 기술이라는 새로운 물을 담지 못하고 있습니다. 대학 내 필수 R&D 지원 시설을 '위해 시설'로만 바라보는 시각에서 벗어나, 국가의 미래를 지탱하는 '핵심 기반 시설'로 재정의해야 합니다.

더 이상 제도가 창의적인 연구활동의 장애물이 아닌 디딤돌이 될 때, 비로소 우리 대학은 세계를 선도하는 혁신 거점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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